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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레나는 대한민국 민요 가수입니다. 본명은 김희숙으로 고교 2학년 때인 1964년 12월 동아방송 가요백일장 연말결선대회에서 장원을 하며 데뷔를 했습니다. 새타령, 갑돌이와 갑순이 꽃타령, 까투리사냥, 성주풀이, 창부타령, 울릉도 사랑 등 신민요 히트곡을 냈지요.



김세레나 프로필

김세레나 나이는 1947년 10월 7일생으로 충남 논산시 출신입니다. 락력은 서라벌예술대학 음악학과이며, 아들 진의남 역시 가수로 활동을 한 적이 있지요.



김세레나 남편 밴드마스터

김세레나 남편은 김세레나가 노래를 할 때 연주를 했던 밴드마스터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세레나 남편은 이혼남이었지요. 혼인신고를 하면서 호적을 보고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직전에 전처와 이혼을 했는데, 그런 사실도 모르고 김세레나는 결혼을 했지요. 그러나 김세레나는 이런 문제를 남편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고,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일을 하지도 않고 김세레가 버는 돈을 탕진하는 등 방탄한 생활을 하여 김세레나를 힘들게 했지요.



김세레나 전남편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술과 도박 여자 문제로 인하여 김세레나는 결국 1974년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세레나 전남편은 1991년 사망을 했다고 하지요.



김세레나는 남편과의 결혼을 무척 후회했는데요.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는데 살다보니 부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들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김세레나 아들 진의남

김세레나는 첫번째 남편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이혼 이후 독신주의자가 된 김세레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는데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무섭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김세레나는 두번째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고, 1983년 재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식 다음날 출산을 했다고 하지요. 속도위반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진의남이었던 것입니다.



김세레나는 아들을 위해서 이혼만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첫번째 결혼 생활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이 되었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참 안타깝게 남편 복이 없었던 것 같네요.



김세레나 첫째 아들은 미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 진의남은 중학생 시절 밴드 활동을 하는 등 가수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김세레나 재벌가의 제안

김세레나는 젊었을 당시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재벌가들의 구애가 상당했습니다. 김세레나는 이에 대해서 <2억이면 어마어마한 돈인데 누가 나한테 그런 돈을 주고 하룻밤 같이 잤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미쳤어요? 하고 딱 거절했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난 그런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진짜 싫었다. 어마어마한 돈이었지만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충분히 잘벌 수 있는데 왜 영원히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기며 그런 행동을 하겠나?>라고 말을 했다.


김세레나의 인생은 정말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두 번의 이혼 그리고 성형부작용>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김세레나는 가수로써는 성공을 했지만 개인적인 삶은 순탄치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들들을 잘 키워냈고, 잘 성장했다는 것이지요.


김세레나가 남은 인생만큼은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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